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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느끼며

남양 성모 성지…영혼으로 만든 공간

by 오늘도좋다 2022. 4. 23.

영혼으로 쌓아 올린 대성당 안에 묵주 기도가 울려 퍼진다.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영혼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그려낸 영혼의 공간에서 이상각 신부의 묵주 기도가 믿음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순례자들이 세상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영혼의 휴식을 갖는다. 절대자를 향한 끝없는 믿음을 단련시키며

수태고지와 최후의 만찬를 주제로 한 현대적 성화가 제단을 장식하고 빛이 들어오는 길게 늘어선 창문을 배경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표정과 자세에서 흔히 보는 예수와는 많이 차이가 난다.

벽의 붉은 벽돌들이 예수의 보혈처럼 짙고 옅음을 통해 분위기를 잡는다. 천정의 창틈으로 들어선 빛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공간을 밝힌다. 건축가가 세심하고도 적절하게 디자인 한 공간에 압도당하며 신부의 믿음에 끌려 들어간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년(1866년) 박해를 받고 처형된 무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순교지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가 시작됐고, 1989년부터는 이상각 신부가 부임하여 30년 넘게 지금의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역사(役事)를 지지하고 나선 사람들은 월 2만원씩, 50개월 기부에 나선 천주교 신자들이다. 그들의 믿음이 이상각 신부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중에서도 마리오 보타 손에서 영혼의 벽돌이 되어 공간이 되고 시간이 된다.

설계에만 5년 걸렸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골짜기에 52m 높이의 원통형 타워 두 동이 세워졌다. 남양성모성지에 들어서면 타워의 강렬함이 자연스레 우리를 대성당으로 이끈다.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향해 나가게 된다. 타워가 풍경의 중심으로 우뚝 서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것처럼. 건축가는 설계로서 말씀을 구현한 것이다.

작은 안내판부터 의자, 파이프 오르간 디자인, 십자가와 성화 설치까지 세세한 모든 것들이 건축의 한 부분으로 마리오 보타의 손을 거쳐 자리 잡았다. 공사 기간 동안 1년에 3~4차례 현장을 방문해 끊임없이 다듬어 대성당이 완공되었지만 여든의 노건축가는 아직도 무엇인가 미진한 모양이다. 주변의 조경공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마리오 보타가 “기도의 장소에 들어서면 침묵과 존경의 순간이 저절로 찾아오는데 그 때 건축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대성당은 그의 설명 그대로였다. 아니 침묵과 존경이 없더라도 기하학적인 건물 형태에서 경외심이 절로 우러난다.

대성당은 총 60만장의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고 한다. 벽돌로 쌓기 까다로운 포물선·원통 모양의 디테일을 요즈음 벽돌공도 귀한 시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믿음이 뒷받침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른지. 어려운 현장의 감독을 맡은 사람은 한만원 건축가로 실비의 자원봉사 수준으로 이 사업에 참여한 것이라 한다.

대성당의 제대에 걸린 십자가 예수상과 성화 ‘최후의 만찬’과 ‘수태고지’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가 맡았다. 작업을 부탁한 것은도 마리오 보타였다. 대성당 제대 상부에 걸린 성화 두 점은 특이하게 모두 뒷면이 있다. 최후의 만찬 중인 예수와 열두 제자의 뒷모습,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는 마리아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제단에는 올라가거나 사진을 찍는 것이 제한되는데 이상각 신부는 이 모든 것을 허용한다. 이러한 너그러움이 이토록 멋진 대성당을 건립할 수 있었던 동력은 아니었을런지

제단 위 성화 수태고지 앞면(왼쪽)과 뒷면(오른쪽)의 부분
제단 위 성화 최후의 만찬 앞면(왼쪽)과 뒷면(오른쪽)의 부분

더욱이 반지는 작품료로 재료값 수준만 받았다고 하니 이상각 신부의 믿음, “‘대성당을 왜 짓는지”를 반지도 공감한 것이리라. 마리오 보타는 “한국 교회에 주는 반지의 선물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반지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마리오 보타도 역시 설계비로 사무실에서 작업하는 직원들의 비용만 청구했다고 하니 신부의 결연한 의지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신부님의 이날 강론은 요한복음 21장이었다.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져라 의지를 갖고 자신이 명료한 의식을 갖고 믿음을 갖고 행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혼의 대성당에 걸맞는 강론이었다. 기적을 이룬 신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강론인 것이다.

아직 성지에는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페터 춤토르의 ‘티하우스’와 승효상 건축가의 ‘순교자의 언덕’, 이동준 건축가의 ‘평화 문화 나눔센터’ 그리고 산책로 등 조경도 손을 보아야 한다. 신부는 계속해서 신도들의 작은 정성을 모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 안을 돌아보며 그저 감탄한다. 그리고 대성당을 언덕 따라 한 바퀴 돌아보며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에 또 놀란다. 리움 미술관의 도자기 모양의 벽돌 건물에서는 답답함을 느꼈는데 앞에서도 뒤에서도 제약 없는 모습이 좋다

대성당을 돌다보면 피에타상과 성모의 고통을 나타내는 부조 형태를 띤 조각 작품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다분히 현대적 조형미를 드러내며 옛 전통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사리오의 남양성모성지에는 대성당 말고도 20단의 묵주기도길이 조성되어 있다. 1991년 10월7일 로사리오의 남양성모성지로 봉헌된 이후 조성되어 왔다. 누워있는 십자가에서 시작하여 로사리오 광장주변과 숲의 오솔길을 따라 돌 묵주가 하나 또 하나 간격을 두고 계속된다..

이 길도 수많은 사람들의 신심이 모여 다져져서인지 나름의 기운이 감돈다. 자연스레 우리를 묵상의 길로 안내한다. 묵주기도 20단의 신비를 모두 묵상할 수 있다고 하나 그냥 걷기만 해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땅을 사지 못해 여러 차례에 걸쳐 조금씩 넓히고 정비한 묵주기도 길을 항공 촬영 했을 때 블라디미르 성모님의 모습이 나타나 모두들 놀랐다고 한다.

남양성모님상이 있는 공간에는 돌의자가 가지런하다. 소나무 숲에서 성모님의 자애를 느끼며 기도와 묵상이 저절로 일어난다.

묵주의 길 돌 하나 하나에 바쳐진 무수한 신자들의 묵상기도가 사방에 가득하다. 어느 묵상은 꽃으로 또 다른 기도는 풀로 나무로 피어났으리라. 목련수잔꽃, 금낭화들도 보인다, 여기 하나 "제1단 영광의 신비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라는 돌묵주 위의 십자가 안내판에 잠시 생각을 멈춰 세워본다

경당 앞 샘물에는 “주님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소서”라며 영원의 샘물을 갈구하는 기도문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 나온다. 이 곳이 병인대박해 남양 순교지라는 표지가 다시 이 곳이 어디인지를 상기시켜 준다. 희미하고 소박한 순교의 역사를 믿음으로 일궈낸 흔적들이 아름답다.

입구 쪽에는 미군 콘센트 막사 모양의 식당과 사무실로 쓰는 2동의 건물이 검게 빛나고 있다. 남양성모성지의 지난 모습을 소박하게 드러내고 그 속에는 아직도 신부님이 계신다. 전화를 하는 모습이 창밖으로 드러나 보인다. 이제는 옮겨가도 될 법도 한데 그런대로 이 곳이 편한가 보다.

나오면서 둘러보니 입구 담벽에는 고대 문명풍 부조 성화가 장식되어 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한 대목이 그려져 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도 대성당 천장에서 틈새로 들어오는 생명의 빛줄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묵주 기도소리가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소리의 울림이 감동으로 남는 것은 대성당 내부 천장의 트러스 구조에 소리가 고이지 않고 통과 되도록 목재 루버를 일일이 설치한 때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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