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받았다. 아니 어느 수집가의 집을 방문했다. 집 문 앞에는 집을 지키는 벅수가 서 있다. 잡귀로부터 집안을 지키는 민머리에 귀가 길게 늘어져 있는 두 개의 석인상이 서있다.
수집가의 문처럼 권진규의 ‘문’이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전시기획자가 안내한다. “이 문을 지나면 수집품이 가득한 저의 집으로 들어 갑니다”라고 알린다.
현대란 선조의 흔적 위에 서 있는 집이다. 대청마루에는 차 한잔의 향기가 그득하고 뜰 안 나뭇잎 그림자를 배경으로 동자상들이 시중을 들 듯 늘어섰다. 마루에 앉아 좌측에는 장욱진의 ‘가족’ 권진규의 ‘모자상’ 등이 보이고 우측방에는 백자항아리와 김환기의 그림이 어울린다.
아래쪽 방에는 고가구들이 장식되어 있고 명품의 생활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하나 하나 명품 아닌 것이 없다. 부자 수집가는 역시 다르다.
인간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냅니다. 물건을 모은다는 것은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모으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장고의 수집품을 볼라치면 처음이 모네의 ‘수련’이요 또 하나가 정선의 ‘인왕제색도’다. 수집가는 그의 에세이에서 “21세기는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이 웅합되는 시대입니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것, 서구의 합리성과 동양의 지혜가 만나는 공존과 융합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수집품들도 그와 같이 말하는 듯도 하다.
국보급 유물과 유명 작가의 그림들 중에 오늘 내 눈을 끈 것 중 하나는 최종태의 ‘생각하는 여인’이다. 마치 반가사유상처럼 생각에 잠긴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턱을 괴고 허리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부처의 세계가 있고 역사도 있고 멋도 아름다움도 있다. 국보도 보물도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다.
범종이 울려 소리의 극치를 알게 하고 백남준의 작품에서 또 다른 상상력을 끌어 올려본다.
예술이란 만드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수집 보존한다고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전시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보는 이의 정신 속에 전기적 스파크를 일으켜 상상력과 창의력의 재료가 되고 정보화하고 유통됨으로써 문화가 되고 미술이 되어 남는 것이다.
이런 종합적인 전시는 한번에 많은 것을 볼 수 있어 좋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것이 넘쳐 흘러 전시를 즐기기에는 압박감을 느끼게도 한다. 어느 수집가의 시간은 1년이 지나 이제 시작의 시작을 해 나가는 것인지 모른다. 앞으로도 새롭게 의미를 새기는 새로운 해석과 전시를 기대해 본다.
전시명 :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기 간 : 2022. 4. 28.(목)~2022. 8. 28.(일)
주 최 :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관람일 : 2022. 5.9
어느 수집가는 고 이건희 회장이다. 수집품 하나 하나가 대단하다. 돈이 없었다면 이 콜렉션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돈 만으로 이러한 수집품을 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대 이병철 회장 때부터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의 선구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시품은 국보인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동보살삼존상’, 한국 화단의 대표작인 ‘김환기의 산울림’,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한일’ 그리고 ‘클로드 모네의 수련’도 전시되었다. 총 355점이라 하는데 참으로 눈에 들어오는 작품도 많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제1부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와 제2부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로 구성되어 있다. 하여튼 대단한 컬렉션이라는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전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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