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ri Sala, ‘1395 Days Without Red’
2011, 단채널 HD 비디오 컬러, 5.0 설라운드 사운드, 43분46초
마리얀굿맨갤러리, 하우저&워스 제공
MMCA서울 5전시실 '나 너의 기억' 전시 중에서
2022년 4월 24일 관람, 관람료는 4천원
한 여성이 어딘가로 향해 간다. 여성이 말을 하지 않기에 걷는 행위의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없다. 골목을 지나고 도시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이라 하기는 어렵다. 여성은 긴장한 채 움츠리며 길을 간다.
길을 건너려는 다른 사람들도 역시 경직된 모습으로 긴장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 보고 달려나가 길을 건넌다. 무엇인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전편을 압도해 나간다. 길 어디선가 총을 든 누군가가 그들을 저격할 것만 같은 긴장감에 우리 시선이 묶여 버린다.
안리 살라의 ‘붉은색 없는 1395일’은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내전 중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반대했던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3년 6개월 동안 포위하는 사라예보 포위전이 벌어졌는데 민병대는 시민들에게까지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다고 한다. 특히 고층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무차별 저격하여 당시 사라예보 시민 가운데 만여 명이 사살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바로 ‘저격의 골목’으로 불릴 만큼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경로를 따라 도시를 걸어가는 광경을 보여주면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말로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으며 출연자의 긴장된 호흡과 눈빛, 그리고 몸짓으로 역사의 기억을 재현한다. 간혹 섞여 나오는 악단의 연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억의 이미지가 되어 뒤섞이다.
경험하지 못한 기억을 연출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고 느끼게 한다. 연출된 기억은 과연 얼마나 사실일까. 영상이 진행되면서 여성의 호흡은 더욱 거칠어지고 우리는 격한 긴장감 속에서도 우리가 지금 현재 여기에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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