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을 묶은 매듭 자국이 선명하다. 어린아이의 엉덩이 같이 매끄러운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묶기의 환영 속에서 어른거린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차용하여 구상적 요소를 바탕으로 추상의 경계로 넘어간다. 이승택의 작품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은 소재의 문화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아흔이 넘은 작가 이승택의 개인전 <(Un)Bound[(언)바운드>가 갤러리현대에서 5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 열린다.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서 전통적 조각의 재료에서 벗어난 비조각적인 고드랫돌, 노끈, 비닐, 각목, 한지, 옹기 등을 활용하여 새로운 조형을 향한 끝없는 열정을 만나게 된다.
“ ‘묶기’라는 행위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착시를 일으키며 생명력에 대한 환영을 불러오는 효과로 연결된다”고 이승택은 말한다. 민속품 고드랫돌을 작품화한 <고드랫돌, 1957>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늘어진 노끈에 묶여진 고드랫돌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는 율동의 서사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악보처럼 늘어진 돌들의 높낮이를 달리하고 나무장대에 매듭의 간격이 호흡의 깊이를 달리하며 시간을 노래한다.
생활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친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며 길어 올린 <거꾸로, 비미술>의 미학들이 긍정과 부정, 명상과 역동성, 머리카락이라는 광적 소재를 통한 실험까지 예술적 조형물이 이승택의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도자기에서 끈이 흘러나와 홈이 파이고, 캔버스도 끈에 묶여 이그러진다. 이승택의 변주는 이렇게 저렇게 이어지고 만들어진다. 그것이 아름다우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묶기와 같은 행위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킨다는데 그 방점이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하나 하나의 아름다움은 이런 용맹스러운 실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이승택의 조형물은 과천현대미술관 야외조각 공원에서 안양예술공원(안양유원지)에서 자주 마주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2020년 연말에서 2021년 초까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된 바 있지만 이번 전시에 눈길을 끄는 것은 매듭의 소품들이 전시장 한구석에서 조용히 나름의 명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우리에게 준 예술적 자유의 시선으로 “세상을 거꾸로 보고 거꾸로 사고하고 거꾸로 살아내며” 한국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였던 노작가의 세계를 마음껏 산책하며 즐겨본다.
나의 관람일은 2022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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