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이나 되었을까 돌아가신 큰 언니 며늘아기한테 전화가 왔다. 요즈음 제철인 새조개를 보내드린다고. 지난 해에도 설 즈음에 샤브샤브를 맛 보시라고 보내주더니 그것이 반갑다. 따스한 마음이 벌써 봄 향기처럼 퍼진다.
지난 번에 비추어 택배의 시간이 늦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후 2시가 되니 도착을 했다. 그러나 외출할 일이 있어 냉장고 신선실에 보관한 후 머리 속으로 지난해 기억을 더듬거리며 샤브샤브를 가늠해 본다.
새조개 샤브샤브 재료를 머리 속으로 점검한다. 배추, 무, 미나리, 쑥갓, 버섯, 만두, 국수 등은 있는데 샤브샤브용 소고기가 없다. 일을 보고나서 소고기를 사서 돌아오니 벌써 7시다. 서둘러 준비한다.
잘 손질해서 포장된 새조개라 쉬이 준비를 마친 후 휴대용 가스버너 위의 냄비에 멸치와 야채로 다시낸 물을 올려 놓고 접시에는 한껏 모양을 내 준비한 버섯과 야채를 진설하고 나니 벌써 8시다.
제철 새조개 샤브샤브를 시작한다. 제철 새조개를 먹는다.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육수에 야채를 이것 저것 듬뿍 넣고 새조개를 살짝 넣었다 꺼내 바다 향기와 고마움으로 버무린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 보는데 이것이 새조개 샤브샤브 맛이다. 바로 그 맛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순간에 흐르던 음악. 그 속에 오늘의 새조개 맛을 띄워 본다. 독일 작곡가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 잔잔한 물살이 곤돌라에 와서 부딪히는 듯 너울거리는 하프 반주에 울리는 이중창을 들으며 지난 날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기억하려는 듯.
겨울이라 신선해서 쫄깃하지만 부드러운 맛. 그 맛을 음미하듯이 입안에서 맛의 여운을 길게 길게 늘여 간직해 본다. 노래의 울림과 이어짐이 옛스럽지만 그래야 보다 더 큰 언니의 맛과도 같으니
정으로 마음으로 먹는 새조개 맛이 남다르다. 큰 언니 생각도 나고 착한 며늘아기의 정도 다시 느껴진다. 작은 정성의 마음이 큰 맛으로 우러난다. 국물에 국수를 끓여내니 짭짤한 사람 사는 맛이 국수에도 배어난다.
쫄깃한 식감을 즐기며 밥 위에 달걀을 풀고 참기름을 두르고 먹고 남은 샤브샤브 국물과 비벼낸다. 그 위에 김을 부셔 얹으면 볶음밥도 아니요 죽도 아닌 것이 사람과 사람이 부딪겨 살아가는 그 맛이 이 맛일까.
또 한번 감사하는 마음. 누군가와 마음이 닿아 있고 그것이 여기건 저기건 지금이건 지난 것이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세상이다. 메타버스의 공간이 기술로써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잠시 이렇게 새조개 하나가 초혼의 의식이 되어 큰 언니를 불러내고 있으니 진정한 맛이란 단순히 혀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도 있는가 보다.
정갈한 나의 레시피
끓고있는 멸치 야채 다시물에 새조개 알배기배추, 미나리, 숙주나물, 케일, 쑥갓, 팽이버섯, 표고버섯, 만두를 취향대로 하나씩 담군 후 꺼내어 소스에 찍어 먹는다.
소스는 간장, 홀그레인머스타드소스, 다시물, 화이트와인, 매실효소.
그래도 새조개에는 고유의 초고추장이 제격이다. 야채는 내 특제 소스가 더 나은 듯
남은 국물에 칼국수 넣어 끓여먹거나, 밥을 넣어 달걀 하나 깨트려넣고 참기름 한방울 떨어뜨려 죽처럼 먹거나 비벼 먹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샤브샤브의 마지막 과정이기도 하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냉이를 곁들이면 맛이 있다는데 다음 번에 좋아하는 냉이와도 한번 해보아야겠다
새조개 이야기 하나. 이름 그대로 새의 부리를 닮아서 그렇게 불리는지 모르지만, 사실 이 조개는 바닷속을 날아다니듯 헤엄친다. 새의 부리처럼 생긴 긴 다리를 이용해 헤엄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살을 가르는 날개 같기도 하다. 새조개가 가장 맛있는 철은 1~3월. 이후로는 산란 준비로 맛이 떨어진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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