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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서서

조선의 승려 장인-- 깨달음과 예술의 세계에서

by 오늘도좋다 2022. 1. 28.

'조선의 승려 장인'이라는 전시 표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참되고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세계라는 전시 소개가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전시에 들어서면 안내문이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손울 씻고 향을 태우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립니다.


이어서 어둠 속에서 붓 끝에 마음을 모으고 한획 한획 조심스럽게 그려나가는 영상이 수행승의 손에서 탄생한 불상과 불화의 종교적 성스러움과 함께 고된 수행의 과정이 엿보인다. 매일 매일의 단련으로 재능의 단계를 뛰어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계가 펼쳤다. 하여 믿음이 영적인 신성함을 예술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우리들 마음은 그것을 공감한다. 그 정성을 공감한다. 그 세밀함에서 그 정교함에서 그 거듭된 생각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비추어 느낀다. 우리에게는 세속의 욕망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순결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으며 확신한다.

한국화 배우던 시절 정탁영 교수님으로부터 그림 그릴 때 마음가짐에 대한 말씀이 떠오른다.
모든 작품들이 정갈한 마음으로 한획 한획 숨을 조절하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붓끝에 힘을 모아 마음으로 그려나갔으리라.

수행승이자 예술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하니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불교의 신앙 대상, 건물, 불구, 장엄물 등을 만드는 전문 출가승을 이른다. 불상을 조성하는 조각승과 불화를 그리는 화승이 핵심이다.

비수갈마천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비수갈마천은 최초로 불상을 만들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으로 건축의 달인이자 신통력으로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창조의 신이다.

현재 전하는 유일한 화승의 철유(1851~1917)자화상
꽉 다문 입술과 응시하는 시선에서 흐트러짐없는 선승의 이미지가 엿보인다.


첫 주제는 '승려 장인은 누구인가'

두번째 주제는 '불상과 불화를 만든 공간'

불사 현장에 모인 승려는 신성한 예배상을 만들 공간을 갖추고 함께 작업하면서 익힌 기술과 문화가 후배와 제자에게로 전승되었다. 선승이 법맥을 잇듯 계보를 만들기도 했다.

형상을 완성한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법당에 봉안하는 예배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음 절차가 필요했다. 불교의식집인 <조상경>의 내용에 근거하여 불복장 의식을 마무리하면 비로소 종교적 예경의 대상으로 생명력을 갖추게 된다.

시왕도 복장물에서 발견된 진언이 눈에 들어온다.
"옴 자례주례준제 사바하부림"
모든 업을 소멸시켜주고 극락에 태어나게 해 주는 주문이란다.

오래 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 모실 부처님의 점안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참여해 본 터라 점안식때 부처님 눈을 그려넣는건가?? 어찌하는건가 했는데 완성은 시켜놓고 씌워놓은 천을 들추면서 불경과 함께 점안법회가 진행되었다.

세번째 주제는 그들이 꿈꾼 세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시공을 초월한 부처의 세계를 표현하고, 불교 교리를 바탕으로 불교의 세계관을 담아 불국토를 표현하고자 했다.

'목각설법상'은 조선의 승려 장인이 법당을 더 아름답고 경건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신심을 드높일지 고심하던 끝에 탄생한 장르라 한다. 기존의 후불화 역할을 대체했다.

예천 용문사 조각승 단응 등이 만든 목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가 펼쳐진듯 어둑한 한칸 방이 금빛 찬란한 부처의 세계로 물들어 있다.

예천과 상주 지방의 사찰에서 후불목각탱을 독특하다 여기며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국보로 지정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장엄한 화엄사상과 불교의 우주관을 표현해낸 정교하고 세밀한 불화 앞에 서니 절로 감동이 인다.

요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세밀화 그리던 장인들이 정성어린 작은 선의 그림을 그리다 나중에는 눈이 멀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데 어찌 그려냈는지. 종교의 힘으로 한붓 한붓 그어 나간 화승의 정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원컨대 이 공덕이 널리 모든 중생에게
두루 미쳐 모두가 함께 깨달음을 이루길!"


네번째 주제 ' 승려 장인을 기억하며'

만든 이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불상과 불화를 바라보며 승려 장인을 기억해본다.

불상과 보살상이 놓인 현대미술과 결합된 벽과 바탕의 화려한 문양은 마치 무당집에 들어선 것처럼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김홍도 念佛西昇圖

발을 걷고 나가 보게 된 반가운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다.

마음을 뚫고 가슴으로 다가 안기는
오늘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다.


예전 간송미술관에서 매년 봄 가을 열리던 전시에서 몇번 만나본 그림이건만 눈이 마주친 순간 역시 김홍도 전율이 인다.

물결이 이는 연꽃위에 앉은 뒷모습의 노승. 달빛인 듯한 머리 주위로 펼쳐진 둥근 광배와 야윈 목줄기에서 선승임이 느껴진다. 작은 담백한 그림에서 수행으로 다져진 노승의 선기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수도승들의 작품과는 또 다른 경지다. 신수와 혜능의 선시가 적당한 비유가 될 수 있을런지.
때때로 다듬고 부지런히 그려서 아름다움에 다가서는 정진의 세계
본래 세상은 아름다운데 마음을 펼치면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오도의 세계


다시 한번 마음모아 전시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비구니 스님들이 십여분 오셔서 열심히 감상 중이시다. 경전을 공부하시고 계시기에 나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시고 가시겠지.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며
그곳이 바로 참된 진리의 자리이다"
임제 의현, 임제록 중에서

마음에 와 닿아 좋아하는 구절이다.
다시 한번 새기며 전시실을 나왔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 입처개진!


조선의 승려 장인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2021.12.7 ~ 2022.3.6
나의 관람일은 2022.1.21
관람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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