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기획한 '설날에 보는 눈 속 현대조각전'
설날 아침 눈이 내려 있었다. 상서로운 징조다. 옛부터 설에 내린 눈은 서설이라 부른다. 화이트 설날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야외조각들이 떠올랐다. 눈들이 기획한 전시를 보기 위해 서둘러 나섰다. 흐릿한 거리의 풍경부터 전시기획에 대해 설명을 하는 듯이 보인다. 전시기간은 대략 오늘이나 내일까지 일 것이다. 전시 안내문도 포스터도 없지만 나는 그것을 느끼고 볼 수 있다.
눈밭에서 서서 문에서 노래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이 눈 내린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어딘지 현대적 슬픔이 배어나는 노래가 '문에서' 잠시 생각의 여울이 일어난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 위로 노래는 흘러가고 황토빛 금속 페인트색의 문은 무언가 아직도 생각을 한다. 다가서 키 큰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보지만 대답은 없다. 찬바람과 함께 얼굴에 다가서는 오늘 전시의 상큼한 냄새가 나를 스치며 퍼져 나간다. 제한된 노래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도 감사하며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생각과 이우환의 생각을 연결해 본다. 서구의 현대적 고민과 동양의 명상이 마주하며 눈 속에 어울려 있고 나는 그리고 내 마음도 그곳에 머무른다
제니홀저 지나친 의무감은 당신을 구속한다
눈 속에 있는 글씨를 읽어본다. 다리 난간에는 제니홀저의 경구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지금은 눈이 덮혀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본다. '지나친 의무감은 당신을 구속한다' 지금 볼 수 없다. 하여 나는 의무감을 느낀다. 손으로 눈을 쓸어본다. 손이 시렵다. 본디 싸락 눈 위에 쓰여진 것과 같은 경구였는데. 현대 미술은 언제부터인가 형상에서도 자유롭고 색에서도 자유롭다. 이제 보이지 않는 것도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해가 뜨면 사라질 눈을 치우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이내 멈추어섰다. 그것도 하나의 욕망이며 멈추어서는 것도 하나의 욕망이다.
사방에서 응축된 비결정적 시간에 눈이 내리고
'세개의 비결정적 선'이 언제나 처럼 나를 반긴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사방에서'도 오늘 어김없이 눈내린 풍경을 연출해낸다. 하지만 살며시 싸락 눈에 덮혔던 지난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오늘은 그것만은 못하다. 묵직한 쇳가락을 용수철처럼 둥글게 말아 놓은 세개의 선이 탄성적인 힘을 갖고 세상을 휘말아 끌어 당긴다. 눈 내린 미술관 야외 풍경이 지나간 시간 속으로 말려 들어간다. 그 시간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내가 함께 한 많은 전시와 미술관에서의 이야기들이 한순간에 회오리치며 과거에서 현재로 내달렸다. 눈은 내가 남긴 발자국외에는 흔들림이 없다. 사방에서의 바위도 끄떡이 없다. 무한한 영겁의 정적인 호흡을 길게 그리고 아주 길게 내쉬고 있다. 자연과 함께 그려낸 작품의 그림은 색다른 감동을 준다
아리랑의 기억, 아이업은 여인의 이야기
조승환의 아기업은 여인의 머리와 콧잔등과 어깨위에 내려앉은 눈이 소복이 쌓인 발등의 눈과 어올려 옛 추억의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아직은 젊은 엄마 그녀가 멀리 하늘을 응시한다. 그리고 "가끔 하늘을 보라"는 말도 생각난다. 작품명은 '16 너 83 아리랑'이다. 무슨 뜻일까? 하지만 그것은 그저 부질없는 짓이며 작가의 또 다른 생각일 뿐이다. 아리랑의 정서를 간직한 작가의 영원한 마음의 여인이 아닐까?
쿠사마 야요이 호박은 눈내린 하늘 속 동화에 박히고
만화 속 아니 동화 속,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앨리스에나 나올 법한 호박이 눈을 맞고 서있다. 담벼락의 선이 길게 하늘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꼭지 달린 노란 털모자에 소복이 눈이 쌓여 있듯이 시간이 그 순간에 멈추어 서있다. 쿠사마 야요이도 이런 광경을 상상이나 했을까? 좋은 작품이란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지부분과 골이 진 어깨 위로 흘러 쌓인 얇은 눈이 하얀 옷이 되었다. 노오란 호박에 찍힌 크고 작은 까만 둥근 점들이 눈 덮힌 공간에 드러나 더 노랗게 변해있다. 묵직한 형태로 눈위에 올려진 호박의 꼭지가 오늘은 유난히 꿈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같다. 눈바람이 준 자연의 선물이다. 하얀구름으로 덮힌 하늘과 눈발이 내려앉은 산등성이와 어우러진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오늘이 최고의 모습이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설 선물이라 할까?
추상에서 구상으로 달려간 말
반대편 자비에르 베이앙의 '말'의 등허리에 쌓인 눈이 햇살에 서서이 녹아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콧등위에도 땀방울이 흐른다. 눈밭을 헤치며 앞에 내다 보이는 하늘을 향해 달리다 보니 이렇게 땀이 흘렀나 보다. 빨갛게 각진 근육 위에 아직도 눈들이 올라타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말은 조형의 세계를 향해 계속 달리고 있다. 빨간 말울음 소리를 내며 각진 근육에 힘을 더한다. 추상화된 면과 순수하게 뽑아 낸 색상으로 형상이 상징적으로 조립되어 다시 구상이 된다.
막달레나 이바카노비치의 안드로진과 수레바퀴
바퀴의 위 아래와 몸통부분으로만 눈이 쌓였다. 신인듯이 도닦는 선인인듯한 수레 위 형상 아래 버팀목에 투각된 A가 선명하게 드러나있다. 그동안에는 놓치고 보이지 않던 부분이다. '안드로진'이라는 언어가 주는 묘한 분위기 속에 목이 없는 사람의 모습이 오늘따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세월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처연함이 있다. 긴 시간 속에는 남자라든가 여자라든가 하는 성은 중요하지도 않을텐데. 더욱이 아름다움의 끝에는 그러한 구별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옥상으로 발을 옮긴다. 오늘은 실내는 스킵이다. 오늘 야외 전시에 깔리는 음악은 희미한 바람소리 그것 뿐이다. 음악소리에 손이 시렵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손은 주머니 속에 보관되었다.
눈 속에서 듣는 유영교의 삶의 이야기
눈 속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은 눈이 삶의 무게로 다가선다. 가장의 짊어진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머리 위로 까치가 한마리 내려앉는다. 오늘은 설날인데 이들은 그때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을까.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며 나도 잠시 지난 삶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유영교가 들려주는 삶의 모습을 나는 알 것도 같은데 과연 다른 사람은 어떻게 들을 것인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은 또 어떻게 우리들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해석할까?
뒤편 정원 땀에 젖은 각축의 인생
커다란 둥근 공을 미느라 뻘뻘 힘들이는 네 사람의 어깨와 등허리 손등 위로 눈이 쌓였다. 둥그렇게 내려앉은 위 절반 쯤의 경계부분이 마치 산맥이 이어지는 모습으로 보인다. 반들거리는 면으로는 주변 하늘과 나무 조각들을 여전히 품고 안았다. 사람들의 얼굴의 턱에 땀방울이 맺혀 곧 떨어질것만 같다. 팔에도 땀방울이 보인다. 부분부분 내려앉은 눈이 이 사람들의 고단함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삶의 각축은 끝없이 이어지고 고단한 우리의 삶은 다시 이 조형물에 한처럼 깃들고 있다
앞으로 나와 본 조각공원은 눈으로 뒤덮여 광활한 설원에 들어선 기분이다. 사람들이 조금 많이 보인다. 2시간 가까운 설중산책을 마치고 돌아선다. 주차요금은 2천원.
자연과 함께 과천현대미술관이 주는 세뱃돈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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