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3,4전시실에서 히토 슈타이얼 개인전 <데이터의 바다>가 열리고 있다. 전시된 작품을 따라 시선을 옮겨본다. 영상과 조형물들이 잘 어울려 나름에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애쓴다. 요즈음의 영상 작품들은 관객의 시간을 빨아 먹고 살아간다. 전시조형물 중심으로 작품들을 들여다 본다.
데이터의 바다에서 영상에 의미를 더하는 조형물. 그것 또한 미술이다.
<미션완료:벨란시지>2019
수직으로 설치된 세개의 화면에서 진행되는 퍼포먼스 영상으로 47분여 동안 진행된다. 앞으로 에워싼 둥그런 포개진 파란 의자와 파란 벽면이 보는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벽면의 벨란시제(BELANCIEGE)라는 문구도 관심을 끈다. 직감적으로 왠지 명품 발렌시아가와 칼라디자인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 벨란시제는 발렌시아가 방식이라는 뜻이라 하니. 원형의 짙은 청색의 무대 위에서 렉쳐 퍼포먼스가 세개의 화면의 영상에서 펼쳐진다. 꽤나 있어 보이는 연출이다.
<소셜심> 2020 18분19초
팬데믹 기간동안 혼란스러운 사회상황과 예술 창착의 조건, 변화하는 동시대의 미술관의 위상을 탐구한 5채널 영상작품이다. 첫번째 방에서는 춤을 추는 경찰 아바타가 4채널에서 사방 벽면으로 정신없이 움직이며 지나간다. 이들의 춤은 팬데믹 이후 퍼지기 시작한 대중들의 시위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 및 군인들의 행위를 번안한 사회적 안무이다. 둥근 투명한 공위에 앉아 감상하도록 놓여있다.
화면으로 구분된 좁은 두번째 방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살바도르 문디>를 찾는 싱글 채널 영상작품이 흐르고 있다. 앞에 놓여있는 둥근 볼에 앉아 감상. 소리와 음악에 절로 몸이 반응하며 움직인다. 쿠션감이 있는 둥근 볼이라 절로 몸이 반응하며 튕겨 오른다.
<태양의 공장> 2015, 23분
현실 세계의 육체노동이 데이터 노동으로 치환되는데이터 사회의 세계상을 담고 있는 작품. 비치의 의자처럼 편안한 의자들이 영상물 앞에 놓여 편한 자세로 누워서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태양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어둠 속에 빛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컴퓨터그래픽과 같은 조형물을 설치하여 가상세계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야성적 충동>2022, 24분
4채널 비디오 설치로 구성. 단채널 내러티브 비디오로 양치기의 이야기가 흐르고 3채널 영상은 특수센서가 감지한 식물 환경의 변화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내러티브 단채널 영상 앞에는 돌의자가 놓여 앉아 감상할 수 있다. 옆과 앞의 유리를 통해 영상이 사면으로 보인다.
어두운 실내 안쪽으로 희미한 빛과 둥그런 조명 느낌의 설치물이 보여 조심스러이 다가가 보니 마치 알타미라 동굴에 들어선 느낌이다. 영상에서 구석기 벽화가 흐르고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벽 너머로도 또 다른 은밀한 공간이 되어 동굴에 갇힌 듯 신비로움을 준다. 감동이다.
<타워> 2015
3채널 영상으로 첨담 기술산업과 전쟁 시나리오 및 자본의 연결성을 보여주고 있다. 타워의 이미지에 어울리듯 빨간색으로 쌓아올린 높은 단 위에 빨강 의자 두개가 놓여 앉아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영상이 흐르는 벽면도 같은 빨강으로 전체적으로 시선을 확 잡아 당긴다.
<Hell Yeah We Fuck Die> 2016
단어의 모양을 따라 제작돤 라이트박스 의자 설치물과 바리케이드를 연상시키는 그리드 형태의 금속 구조물 및 네편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어있는 중심>1998 62분
방석 크기의 포대자루에 내용물을 담아 차곡차곡 쌓아 놓은 의자 위에 앉아 감상하도록 되어있는 이곳 또한 너무 매력적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앉아 영상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유동성 주식회사> 2014
단채널 HD 디지털 비디오 30분 15초
뒤쪽의 높은 구조물 위에서 영상 앞으로 마치 폭포수가 흐르듯 새파란 천이 흐르듯 깔려 있고 역시 같은 파란 천으로 돤 눕다시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편한 천의자가 놓여있다.
<자유낙하> 2010
마치 비행기 안에 들어선 듯 한 느낌이다. 영상물 앞으로 놓인 의자가 비행기의 좌석을 연상시키고 실내에 흐르는 빛이 어울려 환상적이다. 계속 감탄.
현대미술관에 어울리는 전시다. 히토 슈타이얼의 전시는 현대의 작가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막연히 짐작하게 해 주는 전시다. 현실과 연결된 조형물도 디지털 세계와 묘하게 연결되어 전체적인 메세지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슈타이얼은 1966년 독일 뮌핸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슈타이얼의 작품 속에서 일본의 느낌이 나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리움에서 본 <이안 쳉:세계건설>보다 더 진지하고 쉽게 다가오는 현대적 전위 종합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나의 이번 전시에 대한 느낌이다.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보기 위한 1층 전시실 앞에 모여 선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이건희 컬렉션이 너무도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슈타이얼 작품을 보고나서 드는 어쩔 수 없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오래전 아방가르드를 외쳤던 그가 지금의 디지털 작품을 본다면 또 무어라 할 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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