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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서서

안드레아스 거스키, 대형 화폭에 펼친 미학

by 오늘도좋다 2022. 6. 12.

거대한 화폭이 압도한다. 한 화면에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사방으로 이어진 파노라마 화면과 같은 작품들이 우리를 끌어들인다. 대형화폭에는 무수한 인간의 군상들이 추상화처럼 메세지를 담아낸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의 갖가지 생각들이 조화를 이루어 세상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것이 사회이고 그것이 역사다. 그것이 공간이고 시간인 것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안드레아스 거스키> 현대미술 기획전을 개최한다.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1955)는 현대 사회를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현대사진의 거장이다. 이번 전시는 3월31일부터 8월14일까지 1980년대 중반의 초기작부터 2021년 신작까지 40여 점이 전시된다.

이 중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I, 2009>은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선물거래소에서 야성적 충동으로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혼란스러운 가운데에서 정연한 질서를 우리는 본다.  팔각형의 링 아니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과 같은 선물시장에서 호가를 부르는 인간들로 대형화면이 가득하다. 이제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장면을 통해 현대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의 피라미드라고나 할까? 2009년은 세계금융위기가 불어닥친 후로 당시 시장이 크게 출렁이는 가운데 선물시장이라는 이해가 맞닥뜨리는 첨예한  시공간을 상상하면 작품이 다시 보인다.

이와 결을 같이 하는 작품은 <아마존, 2016>이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 선반에 빽빽하게 들어찬 상품들이 끝없이 펼쳐있다. 작가는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라 자연스럽 게 감소된 시지각의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이미지는 소비 지상주의의 자본주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어디인지 모르게 엄습해오는 인간소외와 자본주의의 우울함을 드러낸다.

<회상, 2015>은 바넷 뉴먼의 작품인 <인간, 영웅적 이고 숭고한>을 게르하르트 슈뢰더, 헬무트 슈미트, 앙겔라 메르켈, 헬무트 콜이 동시에 보고 있다. 이 모습이 실제 만남의 현장인지 궁금하다. 슈미트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인상적인 액센트가 되어 기념비적 회화의 평평하고 넓은 빨간색 화면에 살며시 스며든다. 우측의 검은색 창틀은 회화 작품의 일부인 검은 띠를 감추고 있다

<벨리츠, 2007> 검정과 베이지의 스트라이프 줄무늬로 보이는 커다란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거리가 숨어 있다. 수레를 밀고 가고 있는 사람과 땅을 파고 가꾸는 사람들이 여러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작게 박혀 있다.  단조로울 정도로 번갈아 이어지는 검은색과 미색의 수평선들은 독일 벨리츠 의 유명한 아스파라거스 밭을 촬영한 장면이라 한다. 항공사진과도 같지만 항공사진이라 하기에는 활력이 넘쳐난다.

<바레인 1, 2005> 구불거리는 도로가 마치 갯벌에 흐르는 물처럼 느껴지는 작품에서도 서있고 움직이는 차량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박혀있다. 누런색과 까만색이 주류를 이루는 작품속에서 vodafone라 쓰인 빨강 글씨가 액센트를 준다. 2005년 바레인에서 열린 F1 경기장의 트랙을 헬리콥터에서 다양한 각도로 촬영한 사진들을 조합하여 만든 이미지다.  임의적으로 포개진 곡선의 검은 도로가 단조로운 누런 사막 풍경을 가로지르며 추상성을 드러내는 것은 역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독특한 수법이다. 

<99센트, 1999 (리마스터 2009)> 대형매장의 진열된 상품속에서 고객들 모습도 보인다. 반복과 사이 사이 작은 변화로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들여다보게 하는 묘한 재미를 준다. 보는 순간 거대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들여다보면 섬세함을 느끼게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알록달록한 상품들은 로스앤젤레스의 대형할인점의 장면이다.  <99센트>는 제목에서도 세계적인 소비문화와 현대적 할인상술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다른 작품처럼 수많은 단편들은 사실감을 간직한 채 추상적 이미지를 더한다. 1999년의 필름 사진을 디지털 편집하여 심도와 채도가 더해진 작품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평양 VII, 2017(2007)> 2007년 작가가 직접 평양에 방문하여 촬영한 <평양>은 북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인 아리랑 축제에서 진행된 매스게임의 장면으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수많은 사람들의 통일된 춤사위로 화면이 가득하다. 관중석에서 만들어낸 노랗고 붉게 퍼져나가는 아침 햇살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땀이 얼룩져 있다. 작가는 선전 구호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상징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십만명이 넘는 공연자가 이루어내는 시각적 장관을 통해 북한의 집단성과 특수성을 전달하고 있다.

<크루즈, 2020> NORWEGIAN RHAPSODY라 쓰인 거대한 유람선이 떠 있다. 같은듯 보이는 구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방들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방 앞의 의자에 앉은 사람도 보인다. 예전 스웨덴에서 핀란드 건너올때 탔었던 바이킹 라인이 생각이 난다. 이 작품도 여객선 '노르웨이 블리스'를 여러 단계에 걸쳐 촬영한 사진을 조합해 디지털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정한 크기의 창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각각의 창문들은 개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디지털 편집을 통해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이미지를 보게 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컬러 챠트와 솔 르윗의 조각적 특성을 적용했다고 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필름 사진에서 시작하여 현대 기술의 총아인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커다란 것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현대 인류문명에 대한 불길한 통찰로 우리의 심미적 심리를 자극해 내고 있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커다람 속에 작은 단편들은 서사를 간직한 추상이 되어 우리를 생각에 젖게 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시원스러운 공간에 스케일이 우리를 폭격한다. 현대문명에 대한 외경과 불안이 거대한 장면위에서 흔들리며 균형을 잡고 있었다.

 

나의 관람일은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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