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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서서

비를 품다. 이우환 <사방에서>

by 오늘도좋다 2021. 12. 18.

비가 내린다. 오늘 같은 날에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도 산책하기 좋다.
비가 오니 물에 젖은 조각들의 모습이 더 좋다. 조각들이 질감을 드러낸다.

이우환의 ‘사방에서’는 돌이 깨어나서 움직인다. 비를 맞아 살아서 움직인다. 어떤 깨달음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철판 위에 빗물이 거울이 되어 세계를 끌어 당긴다.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비가 뿌려지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그려진다.

미술관 앞의 타일에는 빗방울이 낙수되어 자연의 음악을 두드린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들리는 듯 피아노 건반을 가볍게 터치하듯 빗방울들이 부딪혀 울린다.

이우환의 '사방에서'가 늦가을 비바람에 꿋꿋이 서 있는 나목 두그루를 끌어안고 있다.



비를 만난 돌은 깊어져 느낌이 살아난다는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철판도 이런 매력을 보여줄 줄이야...

야외조각공원에서 만난 이우환의 <사방에서>는 지금까지 수없이 지나면서 보아왔지만 오늘은 마치 처음 만난 듯 새로운 느낌으로 진한 감동을 준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돌과 철판을 무심하게 놓고, 네개의 돌과 네개의 철판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우환의 작품. 최소의 개입 으로 동양의 선과 명상으로 이끄는 듯 한 이우환의 조각과 회화는 항상 마음으로 다가서게 된다.

철판에 물기가 스며들어 깊어진 색깔 그 자체로도 최고인데, 철판거울이 되어 위에 놓인 다듬어지지 않은 네개의 돌을 품어 안으니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한껏 느낄수 있었다. 늦가을 비바람에 꿋꿋이 서 있는 멀리 선 나목 두그루까지 끌어안고 있다. 흐릿한 하늘도 내려와 앉았다. 나도 울림이 되어 철판 위에 머문다. 서로 다른 우리 모두가 관계 속에서 서로를 품어 안았다.

이 감동 만으로도 오늘 미술관 감상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미술관 찾은 의미는 차고도 넘쳤다.

2021 .11. 30. 비오는날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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