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구에 담긴 시간증폭의 비밀은?
2022.1.2. MMCA 과천관 1전시실. 은박의 크고 작은 구들이 대지의 시간을 채우고 있다. 어두운 공간을 하나 둘 헤쳐 나가다 보면 전시실 한 쪽 벽면에 명상을 하듯 작품 하나가 공간을 응축하여 기품을 뿜어내고 있다. 너무도 단정하여 오히려 자연스러운 조형물.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무껍질을 속살처럼 드러내고 반질거리는 크고 작은 검은 조약돌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끈다. 누구의 작품일까?
올라퍼 엘리아손의 <시간증폭기>다. 유목, 검은 돌, 크리스탈 구, 철로 이루어진 18× 118 × 14 cm 의 2015 년 작품.
한개의 크리스털 구와 11개의 까만돌이 1/4 쪽의 나무판 위에 올려져있다. 12라는 숫자가 시간을 상징하는것 같다. 겉면의 나무껍질은 그대로 살린 유목의 받침대 또한 흘러가는 시간의 연속성 인 것이란 생각이다.
이것이 시간을 증폭하는 것일까. 시공을 압축하는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작품 자체가 만들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가는 설치의 설계도와 시방서를 제공할 뿐이다. 그것이 어떤 공간과 시간에서 어떻게 만날지는 작가가 정하지 않는다. 현대 미술의 특징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그것이 올라퍼 엘리아손 작품에서 느껴지는 매력이다.
자그마하지만 투명한 크리스털 구 안으로 삼라만상이 담긴 듯, 미술관 내부의 작품과 바라보는 나까지 담아내며 반짝반짝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11월30일 전시된 모습이다. 수정구의 위치가 달라져 있다. 1월에는 첫번째에 11월에는 11번째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작품 감상을 하며 옛 사진을 들추다 보니 수정구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수정구는 현재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재들이 응축되어 검은 조약돌에 담겨있다. 아니다. 조약돌에 있던 시간들이 수정구를 통해 증폭되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모락갤러리 자연이 만든 시간증폭기
다음날인 2022.1.3 아침 산책 . 올라퍼 엘리아손의 <시간증폭기> 를 떠올리며 우리가 이름지은 모락갤러리를 찾았다. 보았던 자연 속 작품은 비바람에 사라진 듯 그때 그 모습이 아니다. 쓰러진 나무는 그대로인데 수많은 돌들은 모두 날아갔다. 나무 위로 몇 개의 돌을 더해 보았다. 하나의 돌 수정구도 올려놓았다. 오늘은 아직 1월이니 첫번째에. 이것이 올라퍼 엘리아손에 대한 나의 오마주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 Gravity>를 들으며 낙엽 쌓인 숲길을 돌아 내려온다.
이것은 자연 속 나의 미술관 모락에 이름 모를 작가들이 정성과 마음을 모아 소박하게 빚어낸 2021년 3월의 시간증폭기다. 또한 마음 속에 기억된 돌들의 아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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