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useppe Penone 가 보여주는 대자연 속 겨울 노래
대리석 표면에서 뻗어 나오는 나뭇가지가 생명처럼 숨을 쉰다. 겨울 눈내린 벌판에 숨을 쉬며 드러낸 생명의 흔적처럼 우리를 아득한 자연 속으로 안내한다. 뒷면은 두들거리는 면에 목탄으로 윤곽을 드러내게 한 것처럼 자연스럽다. 눈밭을 걸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눈내린 들판에서나 느낄 수 있는 사실감을 드러내 준다.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는’이라는 서산대사의 선시가 문득 생각난다.
<돌의 몸 - 라미(cod 2033) >2016
카라라 흰 대리석.브론즈, 벽면에 흑연 프로타주, 대리석:126 × 151 ×18cm 벽면:가변크기
흰 대리석위에 꽂힌 수십개의 작은 가지 모양의 브론즈가 흑연 프로타주 벽지를 배경으로 거대한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하얗게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깊은 숲속에 따사로이 내리쪼이는 겨울 햇살을 받은 나목들의 그림자가 보이는 천연의 자연이 느껴진다.
* 프로타주 : 나무판이나 잎 천 따위의 면이 올록볼록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무늬가 베껴지는데,그때의 효과를 조형상에 응용한 것을 프로타주 기법이라고 한다.
<불분명한 경계들 – 트레비아>는 브론즈로 만들어졌다. 가까이 다가서야 나뭇가지가 아닌 브론즈로 만들어진 나뭇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나무와 브론즈의 불분명한 경계라는 것인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인가? 제목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본다.
마치 실제 나무를 사용한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눈덮인 나뭇가지에서 생명의 가지가 솟아난 것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흰 대리석 받침대 위에 놓인 쓰러진 줄기에서 뻗은 나뭇가지가 하나 세워져있다.
<불분명한 경계들-트레비아( cod1673)> 2012
카라라 흰 대리석, 브론즈, 160 × 70 ×24cm
2개의 작품이 잘 어울렸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 우리는 너무도 쉽게 현실로 돌아온다. 작품은 어느 카페의 조형물이나 장식처럼 우리를 맞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작품을 보호한다고 설치한 안전선 때문이었을까. 그러면서 드는 하나의 의문은 안전선 설치시 작품과 어울리는 소품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Giuseppe Penone는 이탈리아의 예술가, 조각가로 2019.7.14일 찾은 로마국립현대미술관에서 <spoglia d'oro su spine d'acacia> 2002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작품으로 만나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반갑다.
가시형태의 작은 조각들이 수없이 화면 가득 채워져 거대한 자연을 표현해 낸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산봉우리 같기도 한 긴 띠의 중심에 작은금박이 붙어있다. 마치 긴 강물 위에 떠있는것 같기도 한 대형 화면의 중심에 박힌 작은 금박이 흰 화면에 박힌 까만 작은 수많은 가시들 사이에서 시선을 잡는다. 극히 부분인 작은 하나의 존재가 큰 화면속에서 주인공처럼 굴고 있다. 차별화된 황금색과 모양이 포인트처럼 눈에 확 들어온다. 자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카시아 가시에 금박이라는 뜻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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