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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서서

옻칠, 품격을 더하다…옻,아시아를 칠하다

by 오늘도좋다 2022. 3. 5.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옻, 아시아를 칠하다' 특별전시실에서 2021-12-21~2022-03-20까지 전시되고 있다.
특별전시실 관람료 3,000원,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로 관람료 50%할인.

옻칠은 단아하고 고귀한 기품을 드러낸다. 화려해도 너무 드러내지 않으며, 소박하고 단순해도 품격을 잃지 않는다. 검은 광택으로 그윽하고, 오래 견디며 오래 간다. 어려서는 옻칠한 나무 그릇, 가구, 공예품 등이 실생활에서 사용되었지만 서구식 디자인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게다가 옻칠한 공예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요즈음은 편히 사용하기에 오히려 부담스럽다.

나의 관람일은 2022. 2. 23
옻제품에 대한 동경이 있다. 중국 상하이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도 함께 전시된다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그러나 이리 저리 미루다 보니 관람이 늦어졌다. 지난 번에는 조선의 승려장인만 관람하고 간 것이 아쉬웠는데 늦지 않게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옻칠을 하면 방수 방충기능으로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고, 검붉은 광택으로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장점이 있으나 옻 오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채취하고 정제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다. 아시아에서만 자생하는 옻나무. 아시아에서 꽃피운 칠공예를 볼 수 있는 전시라 하니 기대를 안고 둘러보았다.

漆(칠)자는 (물 수)자와 (옻 칠)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옻나무에 나오는 진액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검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느데 예전에 옻칠의 색상이 대부분 검은데 기인한 것이다.

전시의 구성은 칠기를 만나다/ 칠기를 꾸미다/ 개성이 드러나다/ 경계를 넘어서다의 섹션으로 나눠 칠공예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현대의 옻칠작품을 보여주며 전시가 마무리된다

1. 칠기를 만나다

옻나무는 중국 또는 인도 티베트 지방이 원산지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다. 옻칠은 수개월에 걸친 채취와 정제 끝에 비로소 바를 수 있는 도료로 탄생한다.

바르는 것도 반복의 과정을 거쳐 칠공예로 탄생한다. 물건 표면에 옻칠을 하고 건조시키면 단단한 막이 형성되어 광택과 윤기가 있으며 물과 부패, 열로 부터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내구성을 높이는 마감재로 사용하고, 접착력이 있어 깨진 그릇이나 벼루 등을 붙이는데도 사용했다.

옻나무 자체를 가공하여 약재나 음식재료로 쓰기도 하였다.

전시의 도입부는 옻칠에 대하여 채취에서부터 칠하는 과정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제대로 된 옻칠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2. 칠기를 꾸미다

옻칠은 오래 사용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아름다움을 더하는 용도로도 발전했다. 옻칠장식은 색을 입히고, 옻칠로 그림을 그리거나(칠화 또는 채화),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장식을 붙이는 기법이 있다.

얇은 금은 판을 잘라 옻칠의 접착력으로 붙여 장식하는 방법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등장했고, 중국 당나라때에는 평탈기법이 새로이 발전했다. 평탈기법은 무늬대로 잘라낸 금은 판을 붙이고 다시 옻칠한 뒤 무늬 부분의 옻칠만 벗겨내어 장식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협저 기법은 흙 등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모시나 삼베 같은 직물을 옻칠로 반복해 붙여 형태를 만든 뒤 원형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매우 가벼운것이 특징이라는 설명과 함께 협저기법으로 만들어진 중국 송나라시대의 칠기 잔받침이 보인다.

칠기 표면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중국에서는 송곳으로 새긴 그림이라는 뜻의 추화라고 불렀다. 대나무로 형태를 만들어 옻칠을 한 남태칠기도 있다.

3. 개성이 드러나다

아시아 각국에서는 다양한 칠공예기법 가운데 국가별로 문화적인 취향과미감에 맞는 칠기가 자리잡았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다

영롱한 빛, 한국 나전칠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패각류를 가공해 꾸미는 나전기법이 발달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정교하게 오려낸 작은 자개를 반복적으로 배열하여 빽빽하게 표현하고, 조선시대 나전칠기는 무늬가 커지고 보다 자유롭고 회화적인 특징이 보인다.

18세기 이후 나전칠기에는 휘어진 상태의 자개를 무늬대로 오린 후 망치로 때리고 펴서 균열이 생기게 하는 타찰법과 자개를 작게 끊어 가공하는 끊음질의 사용이 이전에 비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조각의 미, 중국 조칠기

중국은 옻칠층을 겹겹이 쌓아 무늬를 조각하는 조칠기법이 송 원대부터 본격 적으로 발전한 이후, 명 청대까지 중국 칠기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칠 층의 색상에 따라 검은색의 척흑, 붉은색의 척홍, 검은색과 붉은색 등을 번갈아 칠한 척서 등으로 나뉜다.

조칠 두보시의 도무늬 삼단합, 중국 원말~ 명초 14세기로 당대의 시인 두보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삼단합. 시의도는 명대에 크게 유행하여 칠기장식의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금의 향연, 일본 마키에칠기

일본은 헤이안시대 이후 옻칠 위에 금가루를 뿌려 무늬를 표현하는 마키에기법이 에도시대까지 주류를 이룬다.

칠마키에 벼루상자. 금가루를 뿌려 배껍질같은 질감을 표현하는 나시지기법으로 배경을 채우고,, 칠 위에 금가루를 뿌리고 평평하게 갈아내는 히라마키에기법과 특정 부분에 옻칠 층을 높이 쌓은 후 금가루를 뿌리고 살짝 갈아내는 다카마키에기법을 섞어 무늬를 표현했다.


동남아시아의 칠기 - 미얀마, 태국, 베트남

미얀마는 다양한 칠기 장식법을 사용한 곳이다. 옻칠에 여러 물질을 섞어 만든 칠반죽을 붙여 부조처럼 문양을 표현하는 떠요, 여기에 유리를 붙이는 흐망지쉐차, 뾰족한 침으로 무늬를 새기고 각종 색칠을 넣어 표현하는 융, 새긴 곳에 금을 넣거나 붙이는 쉐저와 등이 있다.

불교국가답게 불교 경전을 보관했던 칠 경전상자가 보인다. 부처의 전생이야기가 정교한 솜씨로 떠요기법과 흐망지쉐차기법으로 가득 문양이 채워져있다. 옻칠에 쌀겨등을 섞어 반죽을 만들어 붙이는 떠요기법은 건조 후에도 금이 잘 가지 않는 견고한 기법으로 여기에 색을 입히거나 도금을 하면 조각작품처럼 보인다.

칠 금채공양그릇은 불교 공양구로 불교 사원에서 과일이나 음식물을 바칠때 사용한 그릇이다. 공양물을 담는 아랫부분과 불탑의 상륜부를 본떠 만든 뚜껑으로 이루어졌다. 떠요기법과 흐망지쉐차기법으로 표면을 장식한 위에 금칠을 했다.

그림이 있는 칠병풍. 미얀마식 인물과 복장으로 표현된 부처의 탄생장면이 그려진 다섯폭의 칠병풍이 화려하다. 나무로 만든 병풍을 검은색 칠을 한 후 융기법으로 장식했다. 화면 중앙에 무우수 가지를 잡은 마야부인이 서 있고 오른쪽 옆구리에 태어난 아기 부처가 보인다. 전시실을 찾은 비구니스님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며 들여다보고 있다.


그림이 있는 칠통도 빼곡한 그림으로 현란하다. 대나무로 만든 원통형 칠기를 붉은색 색칠을 하고 융기법으로 만든 통이다. 융기법은 미얀마에서 생활 도구용 칠기 제작에 주로 사용하는 기법으로 칠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고 뾰족한 침으로 선을 따라 새긴 다음 그 틈에 다양한 색의 안료를 넣어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융과 물건이라는 뜻의 데를 합쳐 칠기를 `융데`라 부른다. 융기법은 미얀마에서 가장 보편적인 칠기 장식기법이다.

태국과 베트남에서는 나전칠기가 발전하였는데, 쓰임새와 기법, 무늬에서 각각의 특징이 보인다.

태국의 나전칠기는 대형 소라를 사용했는데 나무 위에 아교로 나전 장식을 붙이고, 그 위에 검은 칠을 한 후 갈아낸다.



베트남의 나전칠 합. 나무를 깎아내고 문양대로 잘라 낸 나전을 박아 넣은 후 옻칠하여 마감하는 `썬캄짜이`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베트남의 나전은 베트남 남부의 나짱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야광패, 중국 등지에서도 생산되는 이매패가 사용되었다. 특히 야광패는 광택과 색채가 풍부하여 즐겨 사용되었다 한다.

4. 경계를 넘어서다

상류층과 아시아에 국한되었던 칠기의 사용이 점차 계층과 지역이라는 경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대항해시대와 함께 칠기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되었고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후기 사회변화와 함께 칠기사용 계층이 확대되고, 보다 다양한 형태와 무늬의 나전칠기가 제작되었다. 조선 중기에 많이 보이던 회화적인 식물 무늬보다 십장생이나 수복무늬, 쌍학이나 원앙 등 자손의 번창이나 화목을 기원하는 길상무늬가 늘어났다.


예전에는 집집에 자개장이 많이 보일 정도로 대중화가 되었었는데 요즈음은 가구의 변화로 대부분 사라졌다. 구하고 싶어도 워낙 고가인지라...미얀마에서는 칠기가 관광상품으로서 오늘날에도 전 셰계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한다.

오늘날의 옻칠, 그 물성과 예술성으로 현대 작품과 함께 전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칠기는 오랫동안 함께 한 생활도구였다. 나무로 만든 물건에 옻칠을 하면 액체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고, 벌레를 먹거나 썩는 일도 막을 수 있다. 아시아의 옻칠문화를 함께 비교해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중국 상하이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유물들이 더해져 조칠기와 마키에칠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전시를 보게 되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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